학교 구두방 아저씨

  우리 아빠는 참 가정적이시다. 요리, 청소, 다리미질, 심지어 단추 다는 것까지 우리집은 다 아빠 몫. 가족의 구두를 닦아주시던 아빠가 내 부츠 뒷굽이 다 나갔다고 좀 수선하라고 하신지가 세 번은 넘었다. 드디어 오늘 수선하러 학교 내에 있는 구두방에 갔다. 사회대에서 구두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가던 중, 구두방 뒤에 큰 소각장 쪽으로 어떤 아저씨가 목발을 집고 절뚝절뚝 걸어가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려니 했고 구두방에 도착하여 보니 문은 닫혀있었다. 그 앞을 서성이는데 아까 본 그 아저씨가 도착하셨다. 구두방 주인 아저씨였다.
  겨울방학 때, 학교 게시판에 어떤 사람이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지나가다가 봤는데 구두방 입구에 아저씨가 글 한 장을 써놓고 문을 닫으셨다고. 사고가 나서 임시휴업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사고로 지금 목발을 짚으신 건지 혼자 짐작해봤다. 왼쪽 다리가 완전히 뒤틀리셨다. 금방 된다 하시길래 안쪽에 앉았다.
  3월 초에 방문한 후로 이번이 두번째다. 구두방은 참 좁다. 쾌쾌하다. 어둡다. 모든 물건들은 세월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낡은 여성구두들은 어디서 주워오신 것 같다. 수많은 우산들, 아마도 주워와 고치신 거겠지 싶다. 어디 사냐고 하시길래 대답드리니 ‘거기 아파트가 참 많죠?’ 하신다. 맞다, 우리 동네는 신주택단지다. 잘사는 동네다. 나중에 여쭤보니 끝 쪽에 사신다며 한남대에서 조금 더 가야된다고 하셨다. 버스를 안탄지 꽤 돼서 요즘 버스번호를 모른다고 하신다. 구두방 앞에 세워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신다고 한다. 어딘가 개조된 것 같은 투박한 오토바이다. 그 다리로 삼사십분을 운전하고 다니신단다.
  이곳에서 구두방을 운영한 지 27년째라고 하신다. 학교도, 사람도 모든게 바뀌지 않았냐고 여쭤봤다. 시작할 때 정심화쪽은 허허벌판이었단다. 이곳에서 다 늙었다고 하셨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거기서 내 구두수선을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나는 그냥 뭐 그랬다. 나오며 오천원을 드리니 지갑을 꺼내어 이천원을 거슬러주신다. 아저씨의 손톱에는 검은 때가 다 끼었다. 절대 빠질 것 같지 않은 검은 때들. 그 손으로 받는 이천원이 절대 더럽다고 생각들지 않았다.
  언제부터 검소함의 미덕이 한낱 쪼잔함 같은 단어로 표현된 걸까. 뭐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던 윗세대들. 우리 부모님은 살만큼 사는 데도 아직도 그러신다. 왜일까. 그 덕에 고등학교때까지 나도 샤프대신 연필을 쓰고, 몽땅연필이 되면 꼭 볼펜대에 끼워서 썼다. 여름에 에어컨 틀고선 춥다고 체육복 껴입고 창문 여는 애들이 싫어 일부러 에어컨을 꺼서 욕먹었다. 나는 지금도 남들이 버린 학교 폐휴지함의 이면지를 주워다 프린트할 때 다시 쓴다. 멀쩡한 핸드폰을  굳이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아저씨가 오랫동안 구둣방을 떠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욕심일까. 학교에서 사라지는 작은 것들이 아쉽다. 학생회관과 기숙사의 소규모 업체들은 사라지고 대형 체인점들이 들어오고 있다. 궁동의 카페들을 보다가 집에 오는 길에 허름하기 짝이 없는 ‘먹자방’ ‘장수분식’ 간판을 보니 괜히 찡했다.
  여름이 되면 음료수라도 사들고 아직도 아빠가 고치라고 성화이신 다른 겨울부츠 한 개 들고 구두방 아저씨를 찾아가야 겠다.

문보람 (경제학과·4)

'시간의 꽃'을 만나다

  2005년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모모』는 우리들 앞에 고개를 내밀었다. 그 때 17살에 나는 틀림없이 모모와 만났는데, 24살에 다시 만나서야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을 느꼈다.
  책 『모모』에서는 주인공 모모가 호라 박사를 통해 시간이 어디서 오는지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모모는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감정과 함께 자기 마음 속으로 들어가 ‘시간의 꽃’을 보게 된다. 그 마음 속 세상에서 모모는 끊임없이 피었다 지는 모모의 ‘시간의 꽃’을 본다. 모모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순간의 ‘시간의 꽃’이 질 때, 가슴이 찢어질 듯해 한다. 하지만 이내 다시 피어나는 시간의 꽃을 보며 황홀해 한다. 그리고 ‘시간의 꽃’을 탄생시키는 해와 달과 별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세상으로 돌아온다. 모모는 마음 속 세상에서 본 ‘시간의 꽃’과, 별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나는 끊임없이 피었다 지는 ‘시간의 꽃’들을 보며 모모가 느꼈을 ‘순간의 소중함’을 내 마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꽃이 질 때 모모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상상이 돼 그녀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모모』는 문학책이고 ‘시간의 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 속의 존재이기에 이를 쉬이 간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내 안에 ‘시간의 꽃’이 그려짐을 느꼈다. 시간이 내게 아름답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시간의 꽃’은 차디찬 겨울에도, 꽃 피는 봄 그러나 괜히 외로운 마음이 들 때에도 어김없이 내 안에 피어난다. 그러나 그 ‘시간의 꽃’을 매순간 느끼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의 꽃’을 느낄 때에 나는 꽃을 지닌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싱그러움을 느낀다.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가 아니라, 그저 존재만으로도 미소를 주는 꽃처럼 내가 ‘시간의 꽃’을 내게서 느낄 때 나는 존재만으로 존재 이유가 충분한 사람이 된다. 
  4월, 벚나무에 벚꽃이 만개해 그 모습을 보고 웃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활짝 핀 벚꽃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꽃을 보며 저렇게 많이 웃고 좋아하는데, 그 순간처럼 많은 순간을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빠르게 가야함에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꽃이 된 기분으로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며 조금 천천히 가면 어떨까. 괜스레 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 많아지는 상상을 하니 사계절이 봄 같을 것 같다는 따스한 기분이 든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에 쫓겨 걸음이 급해진다. 그리고 할 일에 쫓겨 마음은 다른 곳에 먼저 가 있을 때 그 순간들은 온전한 내 것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순간이 오면 모모를 떠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순간을 느끼고 그 소중함을 알고 살아가는 모모를 떠올리며, 그저 노력하기로 했다. 내게 찾아온 순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게. 내게 ‘시간의 꽃’이 피어있으니 조금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올해 봄은 말이다. 그렇게 피어난 꽃과, 꽃처럼 피어난 사람들이 함께인 봄이었으면 좋겠다.

황다혜 (경제학과·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