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김태영

  대학생. 이 한 단어가 품은 함의는 꽤 긍정적으로 쓰여 왔다. 독재정권에 맞서 깃발을 휘날리며 불합리함에 저항하던 지성, 배낭 하나 메고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 구습에 젖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크리에이티브 등등…. 비록 최근에 와서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며 골골대는 이미지가 생겼다지만, 여전히 대학생이란 단어는 푸른 날의 구름처럼 이상적인 맛이 있다. 하지만 속사정도 과연 그럴까. 매년 대학가를 울리는 얼차려 소리는 청운(靑雲)을 검게 물들이다 한 줄기 벼락으로 찢어버린다.
  얼차려의 이유는 다채롭다. 전부터 내려오던 관습이기도 하고 자신도 받았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심리 역시 작용한다. 또한 후배들의 언행이 못마땅해 군기를 잡겠다는 명목 하에 행해지기도 한다. 필자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선배는 후배의 자유의사를 빼앗으며 부당한 행위를 강요할 권리가 없다. 얼차려는 엄연히 강요죄에 해당하는 위법행위다. 거기에 폭력과 협박까지 가세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있으랴.
  꼭 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얼차려 행위는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납득하기 힘든 구습이다. 명백한 상하관계 속에서 선배라는 이유로 후배에게 행하는 강압적인 행동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한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입장은 꽤 떳떳하다. 피해자들이 얼차려에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일부는 후배들이 얼차려를 과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데 무슨 문제냐며 반문한다. 대학생의 입에서 나온다는 말치곤 퍽 단순하다.
  대중매체에 관한 기초적인 이론 중 침묵의 나선이론이 있다. A의 의견이 다수의 지지를 얻을 때, 소수는 침묵한다는 이론이다. 얼차려 역시 마찬가지다. 불만이 있더라도 다수가 별 말 없이 얼차려를 받고 있으니, 그 누가 총대를 메고 나서 과 생활을 말아먹으려 하겠는가. 이를 얼차려에 ‘동조’했다고 보는 건 꽤 웃긴 일이다.
  후배들이 얼차려를 즐기는 것 또한 적응기제가 발휘된 것일 뿐이다. 자, 다들 새내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고단한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해 선배, 동기들과 잘 지내보고자 부푼 맘을 안고 있는데 얼차려라는 관문이 있다. 그런데 선배들도 당했던 일이고, 동기들 몇몇이 선배들에게 실수해 합리화할 명분도 생겼다. 당신의 선택은? 굳이 저항하며 모난 모습을 보이기보단, 갖은 합리화를 통해 버텨내고자 하지 않겠는가. 이게 적응기제의 발현이다.
  깨어 있는 지성은 구습에 젖은 우리를 깨우고 시선을 번득이게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지성은 깨어있는가. 군사정권의 유물이자 잘못된 군대문화의 단면인 얼차려에 대해 너무 무비판적이진 않았는가. 명백한 위법이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얼차려 문화. 지금이라도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개혁해서 개성과 인권이 보다 존중받는 대학사회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