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대들은 쿨하게 사랑하고 쿨하게 살고 싶어 한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매사에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한 채, 남보다 우월한 듯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쿨함을 최고의 찬사로 사용하고 있다. 자신을 떠난 연인에 대한 쿨한 태도를 다짐하는 대중가요의 가사는 큰 호응을 얻고, 패션계의 시크한 스타일은 모던룩과 세미룩 계통에서 최고가 된지 오래다. 우리는 왜 쿨함에 이토록 열광하게 된 걸까.

  쿨, 약점 감추는 훌륭한 가면

  쿨함의 기본적인 속성은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상처받지 말기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이 상처를 많이 받고 집착을 많이 하면서 산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쿨(cool)하다는 표현의 시초 역시 이런 맥락에서 시작됐다. 아메리카의 흑인 노예들은 비인간적이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기 위해 재즈와 춤으로 순간순간을 지우려는 처절한 노력을 했다. 이처럼 쿨하다는 것이 노예시대 때의 착취와 차별, 불이익을 견뎌 내기 위해 고안해 낸 방어 장치였듯, 현대사회에서 쿨은 또 다른 사회적 좌절감과 박탈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책으로 쓰이고 있다.
  인천 나누리병원 정신과 김혜남 의사는 “쿨은 불확실하고 무기력해지는 현대인들이 그들이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디려는 것과 비슷한 심리적 메커니즘이라 생각된다”며 “자신의 약한 부분이나 의존적인 부분을 감추고 아무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모습이 되고 싶은 것은 그만큼 우리가 외롭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나도 슬프지 않아 난 쿨한걸?

  쿨함의 또 다른 속성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실은 타인에게 쿨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무 것에도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감탄하면서 바라보는지 슬쩍슬쩍 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자신이 타인에게 쉽게 상처받고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원한다는 것을 노출시키면 타인이 자신을 함부로 할까봐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뭇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 싫어하다보니 슬픔의 감정에 대해선 더욱 인색하게 됐다. 하지만 적절하게 밖으로 표출되지 않은 감정은 마음속에서 곪아 터지는 법.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쿨함을 강조하는 현대인의 감정억제 문화는 인간의 자비심을 억압하는 문화인 것 같다. 아무리 슬퍼도 쿨하게 대처하는 세련된 도시인의 감성은 타인을 향한 따뜻한 감정마저도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슬퍼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빼앗겨서는 안 되는 권리다. 너무나 쉽게 슬픔을 극복하는 인간은 유능한 인간이 아니라 슬퍼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인간이다. 그녀는 “연민을 잘 느끼는 사람들에게 ‘오지랖이 넓다’고 ‘네 코가 석자다’라고 타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남을 더 잘 돕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다. 슬픔을 절실히 느껴본 이가 타인의 슬픔을 상상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쿨한사람과 나르시스트의 공통점

  쿨한 사람들은 나르시스트를 닮아있다. 김혜남 의사는 “나르시시즘은 과대자기를 특징으로 한다”며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며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비웃을 수 있는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고 싶은 욕망”이라고 말했다. 나르시스트들의 과대자기는 기반이 약해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항상 외부로부터 확인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독립적이고 외부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현대의 나르시스트들은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지를 항상 의식하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타인의 사소한 시선이나 말 한마디에도 큰 상처를 입는다.
  쿨하다는 것 역시 이렇게 남의 시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오히려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귀결 된다.

  어깨의 힘 풀고 조금 덜 멋져도 돼

  김혜남 의사는 쿨함을 역설적 초연함이라고 정의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은 물론 자신의 감정과도 거리를 두며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한 심한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특징은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기, 쾌락추구, 세속적인 물질적 특징을 가진다. 그만큼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불확실하고 불안함을 느끼며 끝없는 비교에 의해 박탈감과 좌절감을 겪는 것을 반증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삶이 쿨함을 허락하지 않더라도 쿨함이란 갑옷으로 무장하려는 젊은이들은 그래서 슬프다. 알고 보면 한치 앞도 모르는 시대에 살아남고자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며 외로우면서도 상처 입기 두려워 외로움을 참아 내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자신이 감추고 있거나 억누르고 있는 분노가 자신을 해칠 수도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쿨함에 오래 빠져있으면 청춘이 주는 열정과 인간관계의 강렬한 느낌과 행복을 놓쳐버리기 쉽다.
  김혜남 의사는 “20대에 이루어야 할 발달과제는 바로 친밀감이냐 아니면 고립이냐의 문제”라며 “20대는 남은 인생의 중요한 결혼과 직업을 결정하는 나이다. 그것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쿨함은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된다”며 “누구나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의 유혹에 잠시라도 심취할 순 있지만 결코 인생이란 쿨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욕망과 시행착오가 얽히며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어깨의 힘 풀고 좀 덜 멋져도 따뜻하게 어우러져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최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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