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 전라북도 장수 의암사에 새로운 논개 영정의 봉안식이 열렸다. 1593년 임진왜란 진주성 싸움 때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했던 논개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역사 인물이다. 그 동안 논개 순국지인 진주 의기사와 출생지인 전북 장수 의암사에는 이당 김은호 선생이 그린 논개 영정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린 논개 영정은 1939년 서울에 있는 소녀 기생을 모델로 했을 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 때 그의 친일행적으로 인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06년 7월 우리학교의 윤여환 교수가 표준영정 작가로 선정되고, 2008년 2월 4일 ‘논개표준영정’(제79호)가 새롭게 탄생하여 우리 품에 안겼다. 그러나 ‘영정 작가’로 알려진 윤여환 교수에게 영정 제작은 그의 작품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전부가 아니다. 염소, 사유문자, 사유몽유 등을 통해 자신의 사유(思惟)를 표현하고자 하는 또 다른 욕구가 그에게는 꿈틀댄다. 작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그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그려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재주가 있다면 사진·모델을 앞에 두고서 인물화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미 죽은 사람, 그리고 사진도 자료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윤여환 교수는 이러한 ‘막막함’을 ‘치밀함’으로 대처한다. 논개의 종친인 신안 주(朱)씨들의 얼굴에 나타난 동일형태 용모유전인자를 뽑아내어 얼굴 형태를 잡고, 복식은 그 당시에 살았던 양반가 무덤의 출토 복식을 연구소에 의뢰해 완성한다. 이처럼 윤여환 교수의 치밀함은 논개 영정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고, 그것은 영정 속에서 향기가 되어 우리에게 은은하게 뿜어져 나온다.

 사유득리, 그리고 사색으로의 여행
 한국화에서 염소는 흔한 동물이 아니다. 먼 곳을 응시하는 눈, 큰 덩어리인 듯 세심한 선을 가진 염소. 윤여환 교수는 염소를 통해 사유를 말한다. “염소의 눈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홍채 위·아래가 떠 있어요. 보통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떠 있다는 것은 현실과 떨어져 있다는 얘기예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상을 바라본다든가, 새로운 세계를 동경한다든가 하는. 또, 금년에 그린 작품에는 새가 나오는데, 다양한 새를 통해 하늘의 메시지를 염소에게 전달하여 사유득리를 얻게 됨을 말하고 싶었어요” 노천명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슴이라는 동물을 선택했고, 파스칼은 갈대를 가지고 자신의 사유를 설명하고자 했다. 신라시대 반가사유상도 그러하다. 그 상이 앉아 있는 자세 자체를 가지고 사유를 설명한다. 윤여환 교수 작품 속의 염소 역시 몸짓으로, 리드미컬한 동선으로 그의 사유를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적선법(積線, 선을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는 기법)을 사용해 한 작품을 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구성해서 창작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그것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작품의 구성·균형·색감 등을 꼼꼼히 짚어주는 그의 눈 속에 어리는 염소는 이미 이치를 깨달은, 저 먼 사유의 여행을 떠난 모습이었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몽유병자와 같다
 그는 염소뿐만 아니라 ‘사유문자’라고 하는 문자추상,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사유몽유’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사유를 말한다. ‘사유몽유’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에서 연유했다. ‘호접지몽’은 ‘물아(物我)의 구별을 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어 즐기다가 꿈에서 깨고 난 후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신이 된 꿈을 꾸었는지 분간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왔다. 마찬가지로 윤여환 교수의 ‘사유몽유’를 통해서 계곡에 흐르는 폭포인 듯,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고, 그것이 또 다시 큰 산으로 변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 논개 영정 (표준영정 제 79호)}

            ^{▲KAIF 2008에서의 윤여환 교수}
 
 그는 지난 9월 19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의 아트페어인‘KIAF 2008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 11월 19일부터 열흘 동안 인사동의 장은선 갤러리에서 “새가 만난 염소의 사유”라는 주제를 통해 또 다시 사람들과 자신의 생각을 소통할 계획이라 한다.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인간은 사유하는 실체이다. 의심하고, 확인한다. 그리고 인식한다”고 했다. 윤여환 교수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인식하기를,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그의 손짓에 화답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임현정 대학원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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